후원회
영성 에세이
손우배 SJ 신부님의 영성특강「슬기로운 영성생활」- 나이 듦, 새로운 소명 I - well dying 선종의 은총
2026.08.28
신앙생활,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오늘 신앙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신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주일 미사는 물론 평일 미사에도 가능하면 참석합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전혀 다른 답이 돌아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의 친서 7개 안에서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이 164번 등장합니다. 요한 사도라면 '저는 주님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라고 답할 것입니다. 루카 사도는 '필요한 것 한 가지만을 움켜쥐고 살아갑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세 사도가 가리키는 곳은 하나입니다. 바로 하느님 현존 안에서 살아가는 삶.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성의 핵심입니다.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
우리는 오랫동안 '하늘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이해해왔습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이 유다인 청중을 위해 '하느님'이라는 표현 대신 '하늘'을 사용한 데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언급하실 때, 죽어서 갈 천국을 가리키는 경우는 1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0%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나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두 번째 목적은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임마누엘, 즉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름 그대로, 그분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 곁에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줄곧 천국이다." 그러니 사무실도, 부엌도, 병실도 모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강의 제목 '사무실에 들어온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죽음, 정성껏 준비하기
우리는 살아가는 법은 애써 배우면서도, 잘 물러가는 법은 좀처럼 배우지 못합니다. 죽음은 늘 저만치 밀쳐 두었다가 어느 날 낯선 손님처럼 마주하는 일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두려워 피할 일이 아니라 정성껏 준비해야 할 소명입니다. 죽음의 순간은 한 사람의 인생이 마지막으로 집약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시간에서 무한한 시간으로 건너가는 그 한 걸음 안에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이 담깁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예수 성심 발현과 파티마의 성모님, 자비의 기도 안에는 한 가지 약속이 반복됩니다. “네 임종의 순간에 너와 함께 있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마지막을 하느님께서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다는 뜻입니다.선종은 은총없이 불가능
우리는 흔히 선종(善終)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말하는 선종은 단순히 편안한 죽음이 아닙니다. 돌에 맞아 순교한 스테파노도,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도 하느님 안에서는 참된 선종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말하는 선종은 마지막 순간 마음을 하느님께 활짝 여는 것입니다. 십자가 오른편의 강도, ‘우도(右盜)’처럼 말입니다. 그는 평생 죄 속에 살았지만 마지막 순간 예수님께 마음을 돌렸고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회심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이러한 열린 마음은 우리의 의지만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선종은 은총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결심보다 은총을 청하는 기도입니다.시공간을 넘어서는 기도의 힘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계십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는 이천 년 전 십자가 위의 주님께도 닿습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하나의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루카 20,3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억과 달리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향기가 되어 잊힌 영혼들까지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서로를 위로하기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고통 중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곁에 부르셨습니다. 모든 것을 지으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위로를 청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통 곁에 머물며 그분을 위로하도록 불리운 사람들입니다. 성체조배와 성시간이 귀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홀로 고독 속에 계신 주님 곁에 함께 머무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 곁을 지켜 주는 것이 바로 위로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이콘에서 어린 예수님은 다가올 수난의 환시에 놀라 성모님 품으로 달려가십니다. 창조주께서 위로받으신 그 품처럼, 우리도 고통 중에 위로받고 또 다른 이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됩니다.마지막까지, 희망
우리가 준비해야 할 죽음의 채비는 단순히 삶의 정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참된 준비의 마음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기에, 오늘부터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성녀 브리짓다(1303~1373, 스웨덴)의 ‘예수 수난 15기도’는 그 길을 도와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분을 위로하고, 동시에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핵심 청원은 하나입니다. 임종의 순간에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어렵게 느껴질 때는 나누어 바쳐도 좋고, 하루를 건너뛰었다면 다시 이어가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주님께 향하는 마음입니다.*본문은 2026년 1학기 법인 영성특강 중 예수회 손우배 신부님 강의를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