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
영성 에세이
송봉모 SJ 신부님의 영성특강「슬기로운 영성생활」- 사무실에 들어온 하느님 나라
2026.06.05
신앙생활,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오늘 신앙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신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주일 미사는 물론 평일 미사에도 가능하면 참석합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전혀 다른 답이 돌아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의 친서 7개 안에서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이 164번 등장합니다. 요한 사도라면 '저는 주님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라고 답할 것입니다. 루카 사도는 '필요한 것 한 가지만을 움켜쥐고 살아갑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세 사도가 가리키는 곳은 하나입니다. 바로 하느님 현존 안에서 살아가는 삶.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성의 핵심입니다.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
우리는 오랫동안 '하늘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이해해왔습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이 유다인 청중을 위해 '하느님'이라는 표현 대신 '하늘'을 사용한 데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언급하실 때, 죽어서 갈 천국을 가리키는 경우는 1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0%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나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두 번째 목적은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임마누엘, 즉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름 그대로, 그분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 곁에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줄곧 천국이다." 그러니 사무실도, 부엌도, 병실도 모두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강의 제목 '사무실에 들어온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지금 이 자리에서 천국 살기
하느님 현존을 경험하려면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내 의식을 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이름 야훼(YHWH)는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행동 양식은 현재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시지만, 우리가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는 오늘만 살라는 권고입니다. 주님의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가르치셨지 '100년 치를 주시고'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사무실이 천국이 되려면
성인의 통공은 어떤 교리 문장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거룩한 삶이 또 다른 사람의 믿음을 일으키는 데서 드러납니다. 6·25 전쟁 때 신자들과 함께 본당을 지키다 순교한 백문필 신부님, 소록도에서 40년 넘게 한센병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돌본 마가렛 피사렉과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님의 삶도 잊을 수 없습니다. 두 분은 끝까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하셨고, 떠나는 순간에도 “항상 기도 안에서 만납시다”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성인의 통공을 다시 보게 됩니다. 성인들은 바로 그 진리를 삶으로 증언한 이들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께 내어 맡길수록, 오히려 더 깊은 평화와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통공은 단지 성인들을 기억하거나 공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역시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며 그분께 자신을 내어 맡기는 삶으로 초대받고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본문은 2026년 1학기 법인 영성특강 중 예수회 송봉모 신부님 강의를 정리한 내용입니다.